[시인] 박라연교수 수필 [치과와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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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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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와 소풍
박 라 연
서른 중반, 전북 익산이란 낯선 도시에 남편을 따라 와 짐을 풀었을 때
솔직히 아주 좋지만은 않았어요. 근데 이사 온 후 겨우 한해쯤이었죠.
저는 잇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 때 떠오른 얼굴이 치과대학 교수님이셨던
이 광희 교수님이셨어요. 서울서 부터 친분이 아주 조금 있었지요.
덕분에 무서우면서도 따뜻하신 치주과 신형식교수님을 소개받았고 따뜻한
배려 속에서 풍치치료를 잘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렀고요. 저는 많이 늦은 나이에 원광대에서 박사학위과정을 받는
축복을 누리던 중 학위논문 통과 과정이 너무 고단했었나봐요.
다시 치과를 찾았어요. 그 때 만난 동진근 교수님은 정말 신사 중의 신사이셨어요.
그 무서운 치과 치료를 다 마칠 무렵 저는 속으로 말했어요. 어째 치과 다니는 일이
마치 소풍 다니는 기분이라고요.
또 세월이 무지 흘렀고요. 저는 신경치료는 물론 치주 염증치료 물론 임플란트를
두개나 해야할 만큼 저의 이빨들은 난리가 났었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도
아! 참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 점은 바로 아직도 두 분 선생님들이 퇴직 직전이었다는
점이었어요. 두 분 계실 때 저의 치료가 다 끝나는 줄 알았는데요.
이는 기계처럼 유효기간이 있더군요. 게다가 저는 이 관리에 철저하지 못한 편이어서
더 문제가 많았어요.
다시 치과를 찾았더니 우리 동진근 교수님은 이미 떠나셨더군요. 막막한 저를
반겨주시는 분은 바로 보철과의 데스크 담당이신 최랑주 수간호사 선생님이셨죠.
변함 없는 고운 미소에 저는 다시 편안한 맘으로 치료석에 누웠어요. 그런데요.
놀라운 목소리가 들렸죠. 딱 동진근 교수님 목소리를 연상케하는 여자 의사선생님!
그 분이 바로 황희선 닥터이셨어요.
아! 어쩌면 목소리의 톤과 질감 매너까지 거의 스승을 빼닮으셔서 벌떡 일어나
확인하고 싶을 정도였죠. 특히 아! 해보세요, 하시면서 환자의 마음부터 편안하게
열어 주시던...그 상황들이 어찌나 감사했던지 그 감동을 이렇게 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존과의 데스크 담당이신 김성윤 수간호사님은 저를
어떤 주저함도 없이 원대 치과 병원으로 이끄는 마력이 있으셨어요.
하루 종일 다양한 매너의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조금은 짜증스러운 순간도 있을
듯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은 적어도 제가 지켜 본 김성윤 선생님은 늘 고상하면서
편안한 미소로 환자들을 대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다짐했습니다. 남편이 퇴직하여 서울로 올라가 살더라도
원대치과병원에 와서 치료 받겠다고요.
또 지금도 저에게 왜 비싼 원대차과병원에서 치료를 받느냐고, 임플란트를
하느냐고 말리는 분도 만난 적 있습니다. 그러나 이 치료만은 아무리 비용이 크게
차이 나더라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병원에서 치료받고 싶습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반겨주시는 병원식구들의 모습들은 돈만으로 살 수 없으니까요.
최근에 결혼하셨다는 김현하 선생님께도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비록 보자기로 얼굴은 가린다지만 이른 아침부터 뭇 환자들의 입을 가슴 가까이
접하시면서 하루를 시작하시고 마감하시는 모든 선생님들께도 수고 많으시다,
라는 말씀도요.
가끔 환자님들의 여러 정황을 대기실에서 또는 치료실에서 함께 접했지요.
아! 화를 낼법한 저런 순간에도 친절한 목소리로 웃는 얼굴이어야 하다니 !
놀란적 많았죠. 아픈 분들의 배려가 우선이시던 간호사님들의 심장을 이 순간
헤아려 봅니다.
그래서 백의의 천사라고 불리우는 직업이구나! 했습니다. 물론 밥먹고 사는
일이 어떤 영역인들 쉬운 곳이 있겠냐고 반문하실 분도 있으실거예요.
하지만 본인이 속한 일터를 신성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늘 잊지 않으시던
모습 오래 기억하겠습니다.